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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문화활동 [후기] 첫사랑 다큐 상영, 감독과의 대화 5/3

  • 2014-05-21 13: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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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3일, 센터에서는 조금 특별한 시간이 있었는데요

<첫사랑 : 1989 수미다의 기억> 이라는 다큐멘터리를 함께 보았습니다.


팩스 한장으로 500명의 노동자를 하루 아침에 해고한 기업 <수미다>

아니! 그 사장을 우리가 직접 만나야겠어! 하고 공장에서 일하고 있던

여공들은 노동조합을 만들고, 임원을 선출하고 일본으로 날아갑니다.

그리고 일년 가까이-


그들이 일년동안 맞선 용기는 무엇보다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그들이 힘있게 살아갈 수 있는, 잊지 못할 시간이 되었다고 하지요.

그 감동과, 그 20년의 세월을 영상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감독님과의 대화!

박정숙 감독님은 우리동네 살고 계신, 자랑스런 은평의 예술인이기도 해요!









IMG_0314.JPG







< 첫사랑, 1989 수미다의 기억 > 다큐멘터리 상영회 및 감독과의 대화 


일시 : 2014년 5월 3일(토) 오전 11시~1시반

장소 : 신나는애프터센터 4층 너른터

감독 : 박정숙 (본 다큐멘터리 감독)

진행 : 김혜정 (오매, 신나는애프터센터 지기)

기록 : 안단령 (단단, 신나는애프터센터 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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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숙 감독님: 매일동네에서 놀다가 여기서 상영하니 쑥스럽네요. 요즘 다들 세월호 때문에 마음 아프고 힘든 시기인 것 같아요. 이 영화를 상영한다고 했을 때 80년대이고 이 영화를 찍을 때 놀라기도 하고 그랬던 게 일본에서 싸우는데 한국정부가 도움이 안 되었어요. 국가라는 것이 뭔지. 오히려 일본사람들이 더 도와 주는 걸 보고 대한민국 국민인 것이 창피했어요. 20년이 지난 지금에도 반복되는 것을 보고 안타까웠습니다.


어라 : 네 영화 너무 재미있게 잘 봤구요. 20년이 지난 다음에 그 때 참여하셨던 분들이 그 때 그 마음을 담고 살고 있다는 것이 많이 느껴져서 수미다는 결국은 이겨서 밀린 임금도 받고 퇴직금도 받고 해서 기쁘게 되었지만, 설사 이기지 못하더라도 그때경험이 당사자와 주변사람들에게 어떤 힘이 되어 남게 되는지가 느껴져서 정말 좋았습니다. 질문은 앞에 10분정도 못 봤는데 찍게 된 계기가 있었는지, 여성노동자의 이야기를 찍게 된 동기는 무엇이었는지. 


박정숙 감독님 : 작정하고 찍은 것은 아니다. 우연한 기회에. 여성노동에 관심은 많지만 수미다 사건은 몰랐어요. 일본 동경에 갔다가 젊은 여자분이 촬영을 왔을 때 그 분이 지원투쟁을 갔던 시민분중 한분이었는데 수미다가 뭔지 아느냐. 17년 전 자료를 그대로 가지고 계시더라고요. 그게 이 영화의 출발이었어요. 일본이 너무 멀어서 엄두가 안 나다가, 찾아보니 또 다른 일로 동경에 촬영에 갔는데 그 당시에 거기에 갔던 분을 만나고 그 여자분들이 대단했다. 그 젊은 여자분들 덕분에 다 한국말을 배운 것이었어요. 그렇게 강렬한 인상을 줬구나. 그때부터 제가 공부를 시작했고 주인공을 찾기 시작했고 시나리오를..쓰기 시작하고 4년정도..걸림

일본분이 저에게 준 메시지 때문에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분들 때문에 시작했지만 자기에게 주어진 그 시간을 최선을 다해서 사는 것이 중요하구나. 나도 참. 지금 이 순간을 최선을 다해야겠다.


수현 : 저희는 영상을 찍고 공부하고 싶어서 동아리를 만들었는데 정말 재미있게 잘 봤구요. 왜 영화를 다큐로 만들었는지 궁금했어요.


박정숙 감독님: 다큐감독이니까. 하하하. 저는 94년도에 처음 카메라를 잡았는데 그때는 다큐가 뭔지 몰랐어요. 그냥 카메라를 우연히 찍게 돼서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곳에 취직하면서 사람들과 인터뷰하는 것이 매력적이었어요. 이게 다큐멘터리의 매력인가보다. 주로 제가 만났던 사람들이 공장에서 파업을 하거나, 여성이 한국사회에서 겪는 어려움. 진심을 느끼는. 한동안 다큐멘터리에 빠져있었고. 드라마는 포장되어있어서 저에게 매력은 없었던 것 같아요.

이 영화를 찍을 즈음에는 처음부터 사람들이 다 말해주는 것은 아니잖아요. 저에 대해서 모르니까. 친해지는 시간이 필요하고요 일본분들은 정말 마음을 안 열어 주시더라구요. 통역이 필요하니까. 일본까지 가서 인터뷰하는데 예,아니오로 만 이야기 하니까. 누군가를 대역으로 찍었다면 덜 실감났을 것 같아요. 찍고나서 노래, 말, 등이 표현인데 주제에 가장 적합한 장르는 무엇인가.

다큐가 주는 장점도 많은데 한계도 있고. 그 사람의 밑바닥까지 인터뷰하는 것이 꼭 다 좋은 것은 아니다. 이 주제를 표현하기 위한 것으로 다큐멘터리를 사용했어요. 지금은 새로운 도전으로 극영화를 준비중에 있어요.


이영언님 : 감사합니다. 먼저 소금 영화도 감명깊게 봤는데요, 이거를 보면서 아까 저도 많이 생각을 했는데 80년대 그 데모 크게 할 적에 그 때 서울 시민들이 많이 협조해줬어요. 데모하는 학생들을 많이 도와줬어요. 저는 수미다를 처음 들었어요. 조금조금 나아질 것 같다는 기대를 가지고 사는데 이렇게 한꺼번에 마음이 아프고 희망은 작아지는 것 같고 작은 촛불을 켜주시는 감독님은 감사한데 그 촛불이 위험할 것 같아서... 사회의 어떤 부분을 부각시켜가지고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주시는 게 감사하고요 여기 있는 불광중학생들 왜 우리에게 어른 취급도 안하면서 변하지 않은 부분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학생들이라는 거.. 저는 서부장애인복지관에서 한글도 가르치고 인권위원회도 나오고 서울시의회 모니터링도 하고 학생들만나러 인권강사도하는 모래알같은 사람입니다.


정미령 : 안녕하세요. 저도 서부장애인복지관에서 이영언님 따라다니면서 시각장애인이고요 정미령입니다. 지난번에 감독님의 영화 잘 들었고요. 이런 영화 자꾸 만드셔서.. 저는 다큐영화 잘 접할 길이 없었어요. 스물 네 살 먹은 우리 아이에게 말했더니 제목을 알더라구요 평을 하더라고요 오늘 본 영화는 제목도 잘 모르고..그렇지만 너무 잘 접하게 돼서 즐거웠구요 아까 영원님이 감독님이 많이 애를 쓰셔서 곳곳에 여성의 소리도 많이 내주시고 제가 시각장애인이 된지 7년되었는데 정말 살이 어렵거든요. 그런 영화도 만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조미연님 : 안녕하세요. 서부장애인-근무하고있는 조미연이고요 편안한 복장으로 왔습니다. 이렇게 활동하는 분들과 영화를 보게 된다는 것이 즐겁고요. 소금을 틀었는데 덕분에 두가지 영화를 볼 수 있어서 좋았고요 이렇게 좋은 감독님과 함께 하는 것이 정말 행운인 것 같습니다. 


오매 : 여담에서 활동하시는 분이 동네 주민으로 오셨어요


반짝: 동네에서 일만했지 놀아본적은 없었는데 이렇게 보게되서 좋았어요. 요새 의욕도 떨어지고 열정이 오래 지속하기가 일하거나 삶에서나 한계도 있고 지속되지 못하는 것에 있어서 힘든 요즘이었는데 영화안의 언니들보면서 순간의 연정을 지속적으로 살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 보고 힘내라고 이런 영화 보게 되었구나. 언니들이 그 열정을 지속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지 감독님의 열정은 무엇인지 궁금해요.


박정숙감독님 : 8개월 정도 투쟁을 했는데 끝까지 할 수 있던 이유는 사장이 만나주지도 않고 인간취급을 안해주니까 400명의 투쟁원들이 바닥에서 먹고 자고 하며 응원해주던 ... 책임의식도 있었을 것이고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일본이 한국 뿐 아니라 전 세계 기업을 만들었는데 그것을 감시하는 시민모임이 있어요. 그 동네 주민들이 김치도 사다주고.. 우리를 응원해주는 사람이 있구나.. 지칠만하면 힘이 나고.. 일반인1000명..2000명..3000명... 버틸 수 있는 힘이 개인의 힘은 약하잖아요. 그런데 옆에 있는 동료들과 자신을 지지해주는 일보인, 한국 사람들이 있어서 그래서 계속 지지해줘야 한다. 


오매 : 편집이 일본가서 박성희언니가 환영받는 것으로 시작되서 80년도 영상이 있었다는 것도 고맙고...20년전 어땠는지를 그려보면서 


최호진님 : 사진을 옛날사진을 보면 촌스럽잖아요. 내가 나를 찍어놓은걸 보면 없애고 싶은데. 시간이 흘렀는데 그런 이미지가 없는 것 같아서 좋고. 이런 질문을 하고 싶네요. 오래전에 고스란이 찍었을 때 지금 생각은 앞으로 어떤 작품을 잘 찍고 싶은지


박정숙감독님 : 찍는 동안에 너무 힘들었어요. 한국이랑 일본을 15번을 왔다갔다했으니까 한번 갈 때마다 500만원~7~800만원이 드니까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이번에는 5명 인터뷰해야겠다. 근데 잘 안되면 혼자 숙소에서 울고.. 너무 긴장되어있으니까 어떤 분이 숙소도 제공해주시고

계획대로 촬영이 안되면 제가 너무 예민해져있는거에요. 돌아오면 응급실에 가거나 아프거나.. 내가 무너지기 시작해요. 다신 영화하지 말아야지.. 아이가 둘이라 쉬지는 못하고 4년의 시간이 개인적으로 고단한 시간이었고 다신 영화하지 말아야지...애기 학교보내놓고 8개월 정도 편집을 하고나니까 사는게 너무 재미없었어요. 죽고싶었고. 그런 시간이 너무 많아서 1년간 영화를 못봤어요. 조금더 여유있고 좋은 조건에서 만들었으면 뒤집고 싶은 순간들이 있었어요. 머리는 더 투자하고 싶은데.. 몸이 빨리끝내자..

스토리가 중간에 무딘 부분이 있는데 수정하고 싶었는데 수정하지 못한 부분이 후회스럽고 다음에 한다면 즐기면서 하도록. 아까 촬영감독 왔다갔는데 이제 좀 즐기면서 하자. 하고나서도 덜 지치고 재미있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위현님 : 저는 보면서 살면서 나라를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지를 많이 배우고 산 사람인데 저분들을 보면서 나라가 우리를 위해서 무엇을 해줬는지. 일본분이 대한민국을 생각하는 당시에 일본인들이 우리나라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궁금해요. 


박정숙감독님 : 지원하러 오신분들이 되게 많다고 했잖아요 지원하게된 동기가 무엇이었냐고 하니까 팩스한장으로 해고 한다는 것이 일본 기업인들에 대해 일본인으로서 창피하고 사죄하는 마음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것에 대해 배웠고 한국 정부에 대해서는 별다른 코멘트는 없었던 것 같아요. 한국의 그 여자들을 한국으로 본 거죠. 한국은 호황기였는데 그 젊은 여성들을 보며 나도 좀더 열정적으로 살아야겠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기들이 에너지를 받았다고함. 제가 찍으면서 한국 정부에 화가난거죠. 한국에 있는 모든 국회의원에게 편지를 보냈어요. 유일하게 노무현대통령이 유일하게 편지를 써주시고 청원해주셨어요. 보니까 무책임으로 일관을 했어요. 나라가 우리에게 해줄 것은 없구나 우리가 나서야겠다. 20대 초반 여자들이 국회를 갔는데 버스에태워가지고 10원도 없는데 중간중간 떼어놓은거에요. 마지막에 난지도에 떨어뜨렸다고해요. 돈꿔서 숙소까지 가고. 대한민국 원래 싫어했지만 타국에 갔을 때 든든함이 있어야하는데 하나도 없었어요. 단식투쟁은 일본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이벤트이죠. 


최호진님 : 제가 딱 70년도에 우리나라 이렇게 살면 안되겠다. 정부가 이러면 도저히 우리가 살 수 없다. 기술자를 해외연수를 시켜야겠다. 1차로 국비로 일본에를 갔어요. 가보니까 우리가 40년 더 뒤떨어져있었어요. 연수를 갔는데 일본사람들이 나에게 어떻게 대했냐면 일본사람들이 나를 거지로 생각하더라고, 엄청 좋은 회사에 다녔는데 사람들이 나를 후진국가의 벌레같이 대하더라고요. 우리나라가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가는 이 순간에도 전부 일본에서 기술을, 법을 글자하나 안 틀리고 구의회에서 해외갔다와서 안동시에서의 글씨 안 틀리고.가져 왔다는데 우리나라가 굉장히 미개했어요. 아무것도 없었어요. 지금 잘 살아가고 있는 데 축적이 된 것 이 없어요. 기술이 있나요. 정치하는 사람들이 너무 잘못하기 때문에 지금부터 쌓아나가는 거죠. 


오매 : 네 감사합니다, 지난 4월 30일은 우리동네 다큐멘터리 감독님 박정숙님이 처음 카메라를 든지 20년이 되는 날이었어요, 축하하는 케Ÿ揚함께 나눠요.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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