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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키코모리와 만나는 지역사회 (5/3 간담회)

  • 2014-05-06 22:30:50
  • 182.218.142.62

 

은둔하는 이와 만나는 사회

“사회와 거리를 두고 사는 청/소/년 지원가 간담회"

지원활동가, 지역 주민, 당사자였던 청년기업가, 부모가 모여 나눈 이야기 (14/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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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자 (신나는애프터센터 오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이 행사를 준비한 것은 지난 2월이었어요. 게이코선생님은 동네에 살고계신 박정숙 감독님과 오랫동안 교류하시는 활동가인데 페이스북을 통해 은평에 있는 청소년센터 단체들을 꼭 방문하고 싶다고 항상 관심을 가지셨다고 했습니다. 한국에 오실 기회가 있어 그 경험을 나누고 싶었어요. 자료를 받아보니 궁금한 것들이 정말 많아지는 다양한 활을 해오셨습니다. 최근에 은평에도 우익적인 내용이 담긴 교과서를 사용하는 학교가 있어서 주민들이 반대를 했었는데 그 활동을 10년넘게 해오시고 승리라는 결과를 얻어냈다고 하시고요. 그 중에서도 히키코모리 청소년관련된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은평에서도 이런 활동을 또렷하게 집중해서 해볼수 있을까, 꿈을 키워봤으면 좋겠다 하여 준비했습니다.

인사말 (신나는애프터센터 보거스) 와주셔서 감사하고 이렇게 멀리서 일본에서 오신 게이코선생님께도 감사드립니다. 요새 사회가 많이 불안한 것 같아요. 간단하게만 생각했는데 한 가지 사고가 나기까지 너무나 많은 원인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너무 안타까웠고, 저도 청소년 일을 오래 해왔지만 어려움에 처하고 있는 청소년, 히키코모리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는 잘 듣지 못했어요. 오늘 이야기들이 나왔을 때 은평구에서 만이라도 이친구들의 어려움을 이야기하고 나눌 수 있는 것이 생겼으면 좋겠다. 이 시작이 작은 원인으로 큰 결과로 일어났으면 합니다.

발표 1. 고세키 게이코 (일본 도쿄 스기나미구 교육활동가)

안녕하세요. 저는 코세키 케이코라고 합니다. 한국에 열번 정도 왔는데, 한국말을 잘 못해요. 박정숙씨와 이야기할 때는 사전을 가운데 두고 하지만 그래도 말이 통하더라고요.

먼저 이번에 진도에서 많은 학생들이 사망한 일에 대해서 일본에서 많이 가슴아파합니다. 저도 추도하는 마음을 표하고자 합니다. 오늘 5월 3일은 헌법의 날입니다. 전쟁하고 전쟁을 하지 않고 무기를 가지지 않는 국가로서 헌법을 지키는 날인데 요즘엔 이상한 경향도 있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많이 아프고 오늘도 아마 일본에서는 헌법을 지키자, 집단 자위권을 갖기 말자, 전쟁을 하지 말자는 활동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오늘 저한테 주신 주제는 히키코모리. 지금은 세계의 언어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게 칭찬받을 일은 아니지만 일본의 하나의 현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저는 38년간 중학교 교사를 했습니다. 저는 대부분의 시간을 학생들의 비행이라던지 등교하지 않는 것, 등교거부 하려고 하는 아이들하고 투쟁했던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아이들답게 사회에서 성장할 수 있는 것이 헌법에서 보장하는 것이 아이들의 권리라고 생각했고 아이들의 중심에서 생각하는 것을 주로 했습니다. 한명 한명의 아이들이 왜 오지 않는가, 아니면 올 수 없는가, 히키코모리를 할 수 밖에 없는가를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깊이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학교 제도라던지 사회의 형태는 문제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저는 2003년 만60세가 되어서 퇴직을 했습니다. 그 때부터 제가 처음 한 것이 교원조합 선생님들이 돈을 내서 만든 교육센터에서 교육상담원으로 자원봉사였어요. 전화상담이나 면접상담을 주로 했는데요, 동경에 있는데 전국에서 상담요청 왔습니다. 학교를 가지 않는 아이를 가진 부모들이 주로 전화를 했습니다. 너무 많아서 교육센터 하나로는 힘드니까 각 지역별로 교육센터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구별로 센터를 만드는 걸 했는데 그 안에서 등교를 하지 않는 등교를 거부하는 아이들을 가진 부모의 모임을 시작했습니다.
그 모임은 자기아이가 초, 중, 고, 대학생까지 등교를 하지 않거나, 등교를 거부하는 아이들을 가진 부모들이 너무 힘들어서 그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장입니다.
일본의 문부성에서는 12만명이라고 하지만 히키코모리가 더 많다고 생각합니다. 하루라도 출석하면 카운트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역사회에서 부모모임을 계속 했습니다. 히키코모리들이 많아지고 연령이 높아지기도 하여 그런 부모들이 많아져서 센터 안에서 상담할 수 있는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초, 중학교까지 등교거부를 하거나 등교를 하거나 하는 아이들 중에 대학생이 되어서 히키코모리가 되어버리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히키코모리는 청년의 문제가 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서 N군이라고 합시다. 40세 기업에서 정규직을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분이 회사에 들어갔지만 회사에서 대인관계에서 적절하게 하지 못하고 상사의 언어폭력을 받아서 어느 날 죽을까 해서 회사 퇴근길에 다리에서 떨어질까 하는 마음에서 이제 회사를 다닐 수 없게 되어 일을 찾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트라우마 때문에 단기 아르바이트나 자원봉사는 할 수 있지만 정규직으로 일할 수는 없는. 이러한 히키코모리인 당사자와의 상담모임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한 명 더 사례를 이야기하면 27세의 K군, 초, 중고를 졸업하였고 히키코모리의 조짐이 있었으나 일본의 6대 명문대학교 중 하나를 졸업하였습니다. 하지만 졸업 한 뒤 밖을 나가지 못하였습니다. 지금 대학을 졸업하고 3년 정도 되었는데 편의점에서 물건정도는 살 수 있지만 누구와도 관계를 맺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머님이 모임에 오시는데 매일 같이 매일의 그런 아들의 상태를 휴대폰으로 메일로 계속 보내십니다. 그렇게 매일 같이 아이를 만나는 상태이기 때문에 모임에 와서 이야기를 합니다. 아이들이 어떤지 이런 이야기를 하지만 비난하지 않고 코멘트하지 않고 상황을 들으며 믿고, 맡기고, 지켜보는 원칙을 지키려고 합니다.


일본에서 히키코모리가 70만명이라고 하는데 이런 말을 합니다. 낮에는 잠을 자고 밤에는 인터넷을 하거나, 책만 읽거나 하는 사람들을 매일 봐야하는 부모의 마음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보건소 체계 안에 그런 아이들을 고민하는 모임이 하나 있고요, 두 번째로는 취업이 최종목표는 아니지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전에 직업안정성 주로 고용안전부에서 아이들이 밖으로 나올 수 있다면 그것도 연결시키자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이 상태중에서 우리들도 아이들의 문제에 대해서 배우면서 청소년들 중에서 발달상 어려움을 겪고있는 아이들이 있죠. 분위기를 파악하지 못하는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도 있고요.

저는 히키코모리와 관련되서 아주 작은 것들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즐겁게 잘 지낼 수 없는 그리고 정규적인 일을 하지 못하는 것들이 정치적인 문제들도 포함해서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에서 일어난 문제이기 때문에 함께 해결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은평구 이 센터도 굉장히 관심이 많은데요 작년에 하자센터 유자살롱에도 방문한 적이 있고 올 2월에는 히키코모리 집회에서도 교류한 적이 있습니다. 저도 한국의 센터에서도 많이 배우고 한국과 공유할 것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청소년들이 생기있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발표 2. 라미영 (은평교육복지센터장)

게이코 선생님의 일본에서의 히키코모리의 현황 잘 들었습니다. 많이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저희 센터의 사례를 이야기해도 되나 부끄러운 생각도 드네요.

저도 청소년 활동을 15년 간 해 왔지만 한국에서도 은둔형외톨이라고 하는 아이들에 대해 깊게 접근하지 못했습니다. 학교 안에 있는 아이들 대상으로 지원할 여지가 있지 학교 밖 아이들에게는 단절되어 있고 역할을 제대로 못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은둔형 외톨이는 스스로 살기 위해 안전하게 자신만의 둥지를 만들고 바깥생활을 관찰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기 때문에 억지로 끌어내는 것이 그들에게 얼마나 안좋은지,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게 하기 위해 세대별 돌봄사업을 은평에 와서 조금 더 고민할수 있는 동기가 되었습니다. 그 아이들이 살고자 해서 둥지를 틀었는데 나눔이 가능한 파트너로 받아들이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타인보다는 자신을 향한 파괴적인 행동을 하는 것이 은둔형 외톨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에 비해 아직 은둔형외톨이의 심각성에 대해 알지 않고 적극적으로 지원하고자 하는 것이 미비한 것이 현 사회 현황입니다. 은평구 학교에 가서 이야기해도 중도탈락 될 위기에 있는 아이들 대해서만 집중, 이미 학교밖으로 나간 아이들에게는 ... 중요하기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요.


'문제행동'이 나오지 않는 경우에는 문제라고 여기지 않은거죠. 부모들도 나이가 들면 좀 나아지겠지라는 생각으로 걱정을 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자력으로는 은둔상태를 벗어날 수 없는 정도 일 때 이때 문제가 있구나, 라는 인식을 하게 되어 시기를 놓치게 됩니다.


가까이에 마을이 있고 필요할 때 손을 뻗어서 도와줄 수 있는 누군가는 있어야 되겠다 하여, 그 일환으로 세대별돌봄프로젝트를 하고 있습니다. 우선은 세가지의 돌봄사업을 하는데요. 참여하는 비율은 아직 높지 않습니다. 은둔형외톨이 아이들에게 접근하는 것이 어렵고 장기적인 결석, 중도탈락위기의 아이들로 지원 폭을 넓혔습니다.


10대는 재능을 가진 강사가 또래 아이들에게 뭔가 알려주면서 함께 조심스럽게 이끌어줬는데 오랜시간 같이 하진 못하였고 이후에 다시 접근하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20대는 마을의 대학생이 멘토로서 활동하는 것, 좋은 형, 누나로 정서적인 지지를 하는 활동을 하고요, 30대는 1시간 학교. 학교에서의 중도탈락 위기에 있는 아이들이 그대로 방치되었을 때 학교를 나오고 나서 비행과 범죄로 이어지지만 은둔형으로 이어지는 것도 15프로나 된다고 합니다. 은평구에 있는 마을엔 도서관 등 다양한 공간에서 예술가 분들과 뜨개질, 양초, 리코더를 하고, 중간에 심리 정서적 지원까지 하고요. 출석이나 등교거부를 하는 아이들이 수업의 대체ㅡ프로그램으로 활동을 합니다. 5명의 아이들이 2주 정도 공방에서 충분히 마을 예술인들과 함께하다가 다시 학교로 돌아간 아이들도 있었고 힘을 받는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통합프로그램으로서 등교거부 아이들에게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더 많이 고려해야 할 점과 조심스러운 점이 있었는데 아이들 삶 가까이에 계신 분들이 가장 더 오래가고 실제적인 역할이 가능할 것이다라는 마음으로 시작한 사업입니다. 아침에 아이들에게 방문하여 아침을 챙겨주고 등교할 수 있게끔 하는 역할을 했고 그렇게 하면서 고시원에서 생활하는 아이들, 오랜시간 잠을 자고 학교를 가지 않는 아이들 같은 경우에는 처음에는 어려웠지만 마음을 열고 함께하는 아이들도 생기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로는 어르신들도 함께하는 것 중에 한부모 아이들 중에 저녁에 많이 방치되어있는 아이들이 있어서 밑반찬을 만드는 것을 매개로 아이들과 함께하는 활동을 시니어가 해주고 계십니다.


복합적인 이유로 은둔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들이 왜 은둔하는지를 찾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현실적인 대안이 필요합니다. 매해 5만명이 은둔형외톨이, 학교부적응-사회부적응으로 이어진다고 본다면요. 은둔형외톨이의 정확한 통계치가 없지만 해마다 증가하고 있고 우리가 접근하는 부분은 매우 미흡하다는 것을 알 수 있겠습니다. 세대별돌봄프로젝트는 실험적인 과정에 있고, 좀 더 고려해야하고 좀 더 조율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의견 주시면 진행하면서 아이들에게 정말 도움이 되겠어요. 이것은 한 개인이, 기관이 할 수 있는 것보다 마을에서 함께 이 문제에 대해 깊이 있게 논의 할 수 있는 것이 필요하고, 어떻게 확장시켜나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도록 하여야 겠습니다.

발표 3. 최하나 (참새의상실)

참새의상실에서 참새를 맡고 있는 최하나입니다. 저는 방안에서 집밖으로 나와 사람들을 만나고 관계하는 과정이 어떠했는데 말씀드리겠습니다. 9년전 서울에 올라왔습니다. 저는 여수에서 나고 자라면서 크게 이사를 다녀본 적도 없고 처음 여수가 아닌 곳에서 살아보는 것이 처음이었는데 서울은 저에게 되게 크고 무서워서 1호선 인천부터 차차 들어와서 서울 구로구 오류동에 오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몰랐는데 오류동이 서울의 변두리라는 것을 처음 알았어요. 서울 안에서 지역적인 편차가 있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어요. 저는 당시 열등감이 컸고, 내가 나온 대학, 내가 사는 곳이 나의 전부라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이러저러한 열등감으로 항상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어려움이 있었고 학교는 여기는 내가 오래다니지 않을 곳이야 여기는 내가 오래 살지 않고 이사갈 곳이야라는 마음으로 누구와도 관계를 맺지 않고 방안에 있는 시간들이 많아졌습니다. 제가 서울에서 오류동에 정착하게 되었을 때 반지하에 살고 있었는데 계속 집안에 있는 시간들이 길어지니까 낮과 밤, 어제와 오늘, 안과 밖의 구분도 더뎌지고 그런 시간이 길어지면서 밖으로 나갈만한 용기가 사라졌고 그런 상태로 계속해서 집안에 머무는 시간들이 늘어났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유자살롱을 매체로 접하게 되었고 유자살롱 아키 대표님을 통해 무중력청소년이라는 것을 만나게 되었는데요, 만난적도 없는 누군가로부터 위로받는다는 것. 이것이 나만의 문제가 아님을 알았을 때 저는 용기를 낼 수 있었습니다. 누군가 나를 이해해 주고 있다는 공감이 나를 밖으로 나갈 수 있는 힘이 되었지만 갈 곳이 없었습니다. 청소년이 아니었고 밖으로 나가려면 무엇인가 해야하기 때문에, 교통비와 식비를 주는 직업학교를 가게 되었고 제가 만난 첫 사회적 공간이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서류를 넣고 면접을 보러가는 날이 제가 유일하게 외출하는 시간이었어요. 1호선 지하철을 타고 가는 길을 잊을 수가 없어요. 다들 나만 보는 것 같았고.. 정말 간절하게 면접을 봤었고 너무 힘들어서 집으로 빨리 오고 싶었는데 면접 끝나고 어딘가에 가서 간절하기 기도할 수 있는 곳에 가고 싶어서 명동성당에 가게 되었어요.

채용이되어 아침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외출 할 이유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동기들이 많이 챙겨주고 응원해주어서 막내 영업사원으로 일을 하게 되었고요 되게 작은 월급이었지만 제 스스로 돈을 번다는게 마음이 안정된 후에 작은 돈을 벌 수 있었던 저를 오롯하게 설 수 있는 과정중에 하나였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4년전 또다른 자아가 생길 것 같아서 참새친구 처피라고 불러달라고 하였는데 그걸 줄여서 참새라고 불리게 되었어요. 처피 뜻 중에 활달함, 이 있다던데 참새로 불릴 때마다 제가 밝은 존재가 되는 것 같았고요.
방안에 있었던 시간들이... 시간을 기록하고 메모를 하는 습관이 생겼는데요, 매일매일 출근하는 길에 지하철 스크린도어, 거울, 제가 비친 모습을 블로그에 올리곤했어요. 제가 막내 사원으로 , 우리책이 잘 있는지, 수금을 하는 일이었는데 매일 여행을 하는 기분으로 다녔습니다. 지하철은 저에게 큰 학교같았습니다. 큰 계기가 되었던 가르침 같은 것이 하나 있는데 제가 오류동에서 사는데요 서울에 끝에서 가장 많이 내리는 곳이에요. 첫 출근날 이렇게 많은 사람이 매일아침 어딘가를 가고있구나 하는 것이 신기했어요. 어느 날은 새삼스럽게 느껴지더라구요 이렇게 같은 차를 타고 가다가 뿔뿔이 흩어지는 것이.


집밖을 나오고 나서야, 한 참지나고 나서야 이렇게 내 주위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구나 알게 되었고 서로 안부를 물어주는 안전한 사이가 필요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아직 방안에 있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돌이켜보았을 때 제가 눈을 떴을 때 어딘가 갈 수 있는 것이 좋았고..참새의상실이라는 이름으로 운좋게 자연스럽게 창업하게 되었어요.

사회문제에서 나의 문제를 발견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 먼저인지 나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사회의 문제를 찾아내고 해결하는 과정이 먼저인지는 모르겠지만 - 참새의상실은 사회진출을 응원하는 소셜패션문화를 그렇게 만들어보려고 합니다. 재봉틀에는 윗실, 밑실이 있는데 윗실을 저라고 생각했고 밑실을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요. 사람과 사람사이의 유대를 만드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회사를 그만두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것은 취직할 때 쯤 출판학교 졸업생중에 반장오빠 소개로 .. 나의 필요보다는 회사에서 필요한 것만 생각했던 것 같아요. 나의 필요에 대해 생각해보자 하고 손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을 배워보다가 만난 것이 재봉틀이었고 가장 아이디어를 주었던게 재봉틀이었던 것 같아요. 몸에 마디를 재는 일에서 유대감이 생기는 것이 가장 좋았습니다. 그래서 참새의상실은 은둔형외톨이를 심리적인문제나 가정의 탓으로 볼 것이 아니라 청년들을 탈 가족화하기위해서 어떤 지원을 할 수 있는지, 가정과, 마을, 청년허브, 어떤 서비스가 필요한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참새의상실은 사회진출을 응원하기 위해 옷을 생산하고 입는 소셜패션문화를 만들고 있습고, 외출하고 싶은 세상을 만들고 있습니다.

오매 너무 멋진 발표들 감사합니다. 시간이 많이 부족하여, 쉬는 시간 없이 토론과 소감 나누기를 해보려고 해요.

참가자 1 응암1동에 사는 청년입니다. 청년허브라는 곳이 청년에게 기회를 많이 주는 곳이라서 야매로 주변에서 얼쩡거리기도 했고요. 저는 학교 밖 청소년들은 교육복지센터로서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통제된 감수성, 열린감수성... 스마트폰중독(자료)에 대해 서술된 부분이 이해가 안갔어요. 무조건 강제적으로 통제하려고 하는 것.. 그렇게 안했으면 좋겠는데 현실적으로 한계가 명확한 것 같고요. 좋은 거 많이 하시는데 제도권이라서 한계가 느껴지거든요.

라미영 제도 안에서 할 수 있는 만큼 하려다보니 한계가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최선이라는 생각으로 하게 되었는데 교육복지센터는 다행히도 마을 안에서 아이들의 삶을 전체적으로 보지 않으면 절대할 수 없는 일이었고, 학교라는 곳에서의 한계와 마을에서의 접점, 많은 그런 부분들에 대한 좀 더 더 유연하게 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했고 그 끝에 세대별돌봄교실을 하게되었고 그들의 삶을 더 진정성있게 들여봐주는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더 많은 노력을 해야하는 점 맞습니다.

참가자 2 독일, 그 나라에서는 정책적으로나 국민적 합의로 차단을어느 정도 제한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한국아이들은 하고 싶어도 안되는구나. 독일과, 프랑스는 아이들이 원하는 교육환경을 제공했느냐를 가장 먼저 보게 됩니다.

사회자 규제를 해야하는지에 대해서는 다른 관점들이 오랫동안 있어왔지요. 그 토론은 다음 기회를 빌어야겠어요. 하지만 은평구에서 청소년과 함께 호흡하는 일들이 점점 많아지면서 모두에게 있는 어떤 관점이나 감수성이 점차 달라지고 변화할 수 있겠다는 생각은 듭니다.

참가자 3 히키코모리 대상의 부모들이 공통적으로 안고있는 문제점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무엇인지 개인적인 의견도 좋습니다. 말씀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고세키 게이코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들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왜 히키코모리를 하는가 원인을 찾지 않는 것이 철칙입니다. 지금 현재에서 시작한다는 것. 누구나 나의 아이가 그런 상태가 될 수 있다, 나도 그런 상태가 될 수 있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지요.

참가자 1 NPO단체들과 연대를 하고 계신가요?

고세키 게이코 하자센터 같은 경우에는 우리 센터와 교류를 하고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히키코모리를 지원하고 있는 곳이 많고 지역적으로 배우고 연결하는 체계가 되어 있고요.

라미영 은둔형 외톨이만을 위한 전달체계가 있지 않아요. 각 시군구에 있는 상담복지지원센터에서 CYS-net으로 위기 청소년을 관리하지만 은둔형 아이들만을 위한 모임은 없고요. 어떻게 보면 여가부의 공적 전달체계도 중요하지만, 참새의상실이나 교육복지센터 같은 곳이 중요할 것 같아요. 깊이 있는 접근이 필요...



참가자 4 제 딸이 은둔형 외톨이어서 도움이 될까 왔어요. 이 동네에서 태어나서 학교 다 졸업하고 일본에서 살았고 지금도 집이 일본에 있는데 일본에서 오신 선생님이 히키코모리라는 주제로 발표한다고 해서 들으러 왔습니다.
우리 딸이 대학을 일본에 있는 OO대학을 다녔는데 거기 청년을 만나 사랑에 빠졌다가 실연을 당한 후 마음을 많이 다쳤나봐요. 3학년 되기 전에 휴학을 하고 부모가 많이 기다렸습니다. 다시 공부를 시작해서 졸업을 간신히 시켜 한국에 같이 왔는데 히키코모리가 되어 버렸어요. 남들이 보면 놀라는데 방문이 다 헤져 있어요. 결혼을 했는데, 부모는 밝은 사람을 만나기 원했지만, 본인은 같은 부류의 사람을 만나게 되면 서로 아픈 곳을 감싸주면서 살지 않을까, 동정의식을 느꼈던 것 같고... 그런데 이제는 남편이 더 큰 아픔이 되고 있어요. 저는 걱정대상이 둘이 됐고요. 그러다 문자를 받고 하나님이 나에게 지혜를 주시려나 해서 왔어요. 방송에서 히키코모리에 대한 방송을 듣는데 왜 우리나라에는 잘 되어있지 않은지.. 좋은 말씀들어서 감사해요.

사회자 정말 이 자리가 히키코모리 당사자와 그 부모에게도 도움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문자를 받고 오셨다니.. 사실 오늘 발표된 내용들은 학교를 통해 전달되기는 한계가 있고, 지역 사람들이 서로에게 입소문을 내주고 할 필요가 있어서 이 자리에 오신 분들의 역할도 크다고 봅니다. 여기 온 많은 사람들도 처음엔 몰랐다가 동네에서 친구가 된 사람들도 많으니, 이 참에 서로 알게 되고 친해지면 좋겠고요.

참가자 4 은평구에는 우리 집같은 집이 굉장히 많아요. 진짜 문자 뿐 아니라 대대적으로 홍보해서 알고 이런 자리에 올 수 있도록 해야 할 것 같아요.

참가자 5 만 62세, 교직생활은 38년정도 했어요. 이제 노인일자리가 은평구에는 작년에 생겼어요. 강남시니어클럽에서 활동하고 있어요. 프로그램이 완전 달라요. 바리스타, 베이킹 이런 것만 있는데... 강남구에서는 교육형이 더 많아요. 명예사서나 주레 등도 하고 있고. 퇴직 후 우울증 걸리는 사람들이 많이 있잖아요, 예전에는 일본이 자살률이 더 높았는데 이제 대한민국이 더 자살률이 높다고 해요. 은평에서 40년 정도 있었고, 교편은 서대문구와 은평구에서. 과목은 국어, 한문이였지요.

참가자 6 학교선생님이셨던 분들이 직업적으로 연계되어 있고 지역적으로도 연계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좋겠다.

고세키 게이코 오늘 만난 것도 매우 중요한 연결이예요. 서로에게 발신을 했다는 게 중요했다고 보고, 관심이 있으니까 이런 만남이 있는 거겠죠! 이런 만남들에 대해 생각해보고 돌아가서 보고할 것이 기대가 됩니다. 감사합니다.

참가자 7 24살인 아들이 제대를 하고 나서 백수로 지내고 있는데, 오전에는 컴퓨터를 계속 하고 해 떨어지면 친구들이랑 뭔가를 하는데.... 아까 스마트폰 중독 이야기도 나왔지만 아이들이 갈 곳이 없어요. 그래서 밤에 술 문화로 빠지고요. 우리 애는 술을 많이 먹는 편은 아니지만, 친구들끼리 교제할 수 있는 데가 거기인 거죠. 목사님이 설교시간에 수다를 많이 떠는 게 좋다고 하더라고요, 정치나 사회에 대한 무겁고 부담스러운 그런 게 아니더라도 그냥 수다. 제가 서부장애인복지관에 참여위원으로 있는데 수다방 만들어달라고 해요. 청소년들이 모여서 수다떨 수 있는 곳.. 그런데 오늘 이 건물은 처음 와 봤어요. 그럴 장소가 있다면 스마트폰 중독은 덜 되지 않을까? 저 어렸을 때는 떼거리로 공터에서 놀았는데 이제 아이들이 전부 스마트폰들여다보는 모습으로.. 정부 정책으로 해결되지 못하더라도 청소년이 열어 놓고 편하게 대화할 수 있는 방을 만들어주면 어떨까. 감사합니다.

사회자 마지막으로 소감 나누고 싶은 분 있으면 말씀해주시고, 발표자들의 정리 말씀 한분씩 듣겠습니다.

참가자 8 저는 은평교육복지센터에서 일하는데, 여기와서 제가 하고 있는 사업에 대한 의미를 다시 알 수 있었던 시간이었던 것 같고... 동네에서 청년모임도 하고 있어요 동네에 계신 청년분들 소개해주시면 함께 즐겁게 놀아보며 같이 할 수 있는 일 찾아보겠습니다.

참새 청년허브라는 곳이 있는데 그 곳 안에서 활동하고 있고요. 참새의상실에서 단체티도 만들고 현수막, 앞치마도 상담받고 만들고 있으니 연락주세요 :) 홍보같은데요, 사무실에 매일 나와 있어요. 저녁까지. 청년허브가 불광동에 있지만 은평지역 안에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없었는데 이렇게 만나뵙게 돼서 즐거웠습니다.

라미영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을 다시 한번 다지는 기회가 되었고요, 초, 중, 고 은둔형외톨이만 고민을 해왔었는데 전체적으로 쭉 이어서 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고, 부모모임에 대해서 많이 배웠습니다. 은둔형외톨이 하면 부모님이 많이 지쳐있기도 한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방안이 없었거든요. 매일같이 아이들의 상황을 보내주시고 소통하고 공유한다는 것이 관에서 세운 센터라는 한계보다는 학령기에 있는 아이들에 대한 접근을 더 빨리 할 수 있도록.. 은평에 살면서 느낀 것은 지역에 힘이 있다. 궁극적으로 그것이 해결이다. 그것을 함께 나누고 세대별 돌봄 프로젝트를 열심히 하도록 스스로에 대한 다짐이었습니다.

고세키 게이코 생각지 못한 시간들을 가지게 되어 너무 감사합니다. 일본이 한국이 같은 상황이라는 것을 느끼고는 있었지만... 여기와서 느낀 것들을 일본에 가서 잘 전달해야겠네요. 어떤 일을 하고 또 도울지도. 처음에는 박정숙씨와 역사인식에 대해 관계가 있었지만 이렇게 확장되어 좋았습니다.

호리미(통역자) 대학을 졸업하고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사람들...상담을 해보았는데 그래도 충분하다. 라는 말을 너무나 듣고 싶었던게 아닐까, 너무 중요한게 아닐까 싶습니다. 마음은 섬세한 것. 다치기 쉬운 것이고요. 그런 섬세함이 필요할 것 같아요. 오늘 되게 많이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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